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한국의 천년 고도 경주에서 막을 올립니다. 2005년 부산 개최 이후 2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이번 APEC은 단순한 국제회의를 넘어, 전 세계 GDP의 61.3%, 상품 교역량의 50.9%를 점유하는 거대 경제 블록 21개 회원국 정상들이 모여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질서를 논하는 중요한 분수령입니다.

이번 경주 정상회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이 예정되어 있어, 외교적 긴장감 속에서 첨예한 경제 안보 현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논의될 것입니다. 특히 한미 간 3500억 달러 투자 패키지를 둘러싼 관세 협상과 K-조선업의 미래를 좌우할 MASGA 조선 협력, 그리고 미래를 정의할 APEC CEO 서밋의 첨단 기술 논의까지, 한국 경제가 직면한 복합 위기를 돌파할 전략적 플랫폼으로서 경주의 역할이 주목됩니다.

I. 외교적 분수령: 경주 개최의 의미와 경제 파급효과

1.1. 경주 개최의 전략적 명분: 포용적 성장과 소프트 파워 외교

경주는 APEC 정상회의를 수도권이 아닌 지방도시에서 개최하여 포용적 성장을 지향하는 APEC의 관례와 정부의 '대한민국 어디서나 잘사는 지방시대 실현'이라는 국정 목표에 부합한다는 명분과 당위성을 강조해왔습니다. 경주가 유일한 기초자치단체로서 유치를 확정한 것은, 국제회의 전문시설인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 등 마이스(MICE) 인프라와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비롯한 풍부한 관광자원을 갖춘 덕분입니다.

경주는 이번 APEC을 통해 한국의 문화 콘텐츠를 국제적으로 소개하는 '소프트 파워' 외교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5 특히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신라 금관 6점이 104년 만에 처음 한자리에 모이는 기획전이 준비되었으며, 신라 금관 모형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특별 제작되어 선물될 예정인 점은, 한국이 경제 논리를 넘어 역사와 문화를 통해 강대국 외교의 경색된 분위기를 완화하는 전략적 움직임으로 해석됩니다.

1.2. 기대되는 경제적 파급효과 분석

이번 APEC 정상회의는 한국 경제 전반에 걸쳐 막대한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APEC 개최로 약 7조 4천억 원 규모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 중 관광, 숙박 등 내수 활성화 효과가 3조 3천억 원에 달하며, 한국에 대한 투자 유발 및 국제 위상 제고 등 중장기 효과가 4조 원 규모로 추산됩니다. 개최지인 경주시에만 약 9,700억 원의 지역 경제 효과가 돌아갈 것으로 예상되어, 마이스 산업 발전과 지역 경제 활성화의 새로운 신성장 동력이 될 것입니다.

II. 한반도를 둘러싼 거대 담론: 관세 협상과 미중 갈등

2.1. 한미 관세 협상의 교착과 3500억 달러 딜레마

경주 APEC에서 이뤄질 한미 정상회담의 가장 큰 의제는 교착상태에 빠진 한미 관세 협상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것입니다. 7월 관세 합의 이후 후속 협상이 난항을 겪는 이유는, 한국이 약속한 3500억 달러 투자 패키지의 성격에 대한 해석 차이입니다. 미국은 이 금액의 상당 부분을 일본처럼 현금성 직접 투자로 요구하고 있으나 , 이는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의 84%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로 한국 경제 사정상 수용하기 어렵다는 여론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현금 투자 대신 보증 및 채무 구성 비율을 조정하고 분산 투자를 제안하는 한편, 외화 유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통화 스와프 체결을 요청했습니다. APEC은 이 투자 금액 조정, 통화 스와프 체결 여부 등 핵심 쟁점을 타결할 마지막 기회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관세 협상은 단순한 무역 장벽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생산 기지 이동(Reshoring) 압박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반도체와 의약품 분야에서는 초기 관세 부과를 시작으로 1년 반 뒤에는 150~250%까지 관세를 올리겠다고 예고하며 미국 내 생산 시설 건설을 사실상 강제하고 있습니다. 국내 바이오 기업인 셀트리온이 미국 생산 시설 인수를 추진하는 등 , 3500억 달러 투자 요구와 관세 압박은 한국의 핵심 자본과 기술을 미국으로 유도하기 위한 '코르셋' 협상 전략의 일환으로 분석됩니다.

2.2. 미중 정상회담과 한국 외교의 실용주의 시험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1년 만의 방한 기간 동안 APEC을 활용하여 한국 대통령 및 트럼프 대통령과 양자 회담을 가질 예정입니다. 글로벌 패권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트럼프-시진핑 간의 미중 정상회담이 한국에서 열린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외교에 주는 부담과 상징성은 매우 큽니다. 핵심 쟁점은 기술 패권, 공급망 분절, 그리고 중국 100% 관세 부과 논의가 한국의 반도체와 바이오 산업에 미칠 파급력입니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은 양국 관계의 새로운 30년을 여는 '경제안보 외교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되며, 2단계 FTA 논의 재점화와 문화·관광 분야 확대가 의제로 다뤄질 것입니다. 이러한 지정학적 격랑 속에서 한국은 이념이나 진영 논리보다 국익과 실용을 우선하는 외교를 펼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미중 정상회담이 국제적 이목을 집중시키는 동안, 한국은 한미/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자국 중심의 아젠다(관세, MASGA 등)를 관철해야 하는 이중적 전략을 수행해야 합니다.

2.3. 숨겨진 안보 쟁점: 원자력과 주한미군 전략

정상회담의 표면적인 경제 의제 아래에는 민감한 안보 쟁점들이 논의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중요한 사안입니다. 한국은 핵연료주기의 선행(저농축) 및 후행(사용후핵연료 처리) 권리 확장을 요구하는 반면, 미국은 핵비확산 원칙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습니다. APEC의 기후위기 및 에너지 안보 의제와 연계하여 돌파구가 마련될지 주목됩니다.

또한, 북·중·러 삼각 연대가 강화되는 군사적 환경 속에서, 미국은 한국이 대중국 견제에 동참하고 필요 시 주한 해·공군 전력을 분쟁 지역으로 전용(전략적 유연화)할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이는 한국이 중국과의 군사적 대립각을 세우지 않기 위해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과 대조되어, 국방비 분담금 문제와 함께 비공식 안보 협의의 핵심 의제가 될 수 있습니다.

III. 미래 산업 혁신 플랫폼: CEO 서밋과 K-기술의 부상

APEC CEO 서밋은 엔비디아 젠슨 황, 삼성 이재용, SK 최태원, LG 구광모, 현대차 정의선 등 글로벌 및 국내 비즈니스 리더들이 총집결하는 네트워킹 플랫폼입니다. 이들은 단순한 경제인 회의를 넘어, 첨단 산업의 미래 전략을 제시하며 투자 협력을 모색할 예정입니다.

3.1. K-조선 부흥의 서막: MASGA와 한미 군함 협력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조선 부흥(MASGA)' 전략에 발맞춰 한국 조선업이 대미 경제 동맹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APEC 기간 중 HD현대는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 헌팅턴 잉걸스(HII)와 상선 및 군함 설계·건조 협력에 관한 합의각서(MOA)를 체결했습니다. 이는 한국 조선소가 미 해군 차세대 군수지원함(NGLS)의 공동 건조 및 설계에 참여하는 첫 사례이며, 한미 조선 협력을 MRO(유지·보수·정비)를 넘어 함정 건조 단계로 확장하는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경주와 지리적으로 인접한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를 방문할 가능성이 높게 거론됩니다. 미 군함의 해외 건조를 금지한 '번스-톨레프슨법'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HD현대와 HII는 미국 내 조선 생산 시설을 공동 투자하거나 신규 설립하는 방안에 합의했습니다. 이 MASGA 협력은 한국의 세계 최고 조선 기술력을 미국의 해양 지배력 재건에 전략적으로 기여하게 함으로써, 한국 조선업을 단순한 수출 산업이 아닌 전략 안보 자산으로 격상시키는 중요한 leverage를 제공할 것입니다.

3.2. AI 병목 현상 해소와 한국의 '테스트베드' 역할론

APEC CEO 서밋 부대행사로 열린 포럼에서, SK 최태원 회장은 인공지능 반도체 수급, 데이터 센터 건설, 에너지 문제 등으로 AI 확산이 더디게 진행되는 이른바 '병목 현상(Bottleneck)'을 지적했습니다. 최 회장은 이러한 병목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글로벌 '테스트베드(Testbed)'로서 한국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한국이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에서 보여주었던 빠른 적응 속도와 확산 능력을 AI 분야에서도 재현할 것이라는 자신감입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참석은 AI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논의에 무게를 더할 것입니다. 삼성, SK 등 한국 기업들은 이 포럼을 통해 단순한 메모리 생산자를 넘어, AI 인프라 솔루션 제공자로서의 위상을 확립하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정기선 HD현대 회장 역시 기조연설에서 AI 기반 자율운항 및 스마트 조선소, 그리고 SMR 등 에너지 혁신 기술을 통한 탈탄소 비전을 제시하며, 미래 기술 표준 선점 의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IV. 결론: 경제안보 외교의 새로운 출발점

경주 APEC 정상회의는 한국이 겪는 경제적 불확실성과 지정학적 위험을 동시에 해소할 수 있는 중대한 전환점입니다. 한국 외교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시진핑 방한을 계기로 지정학적으로 인접한 중국과의 협력 구조를 동시에 재정립해야 하는 국익 우선의 실용 외교를 펼쳐야 합니다.

APEC 기간 중 타결될 한미 관세 협상의 최종 합의(3500억 달러 펀드 구조, 통화 스와프), MASGA를 통한 조선 산업의 전략적 지위 확보, 그리고 AI 병목 현상을 해결하려는 K-기술의 글로벌 '테스트베드' 역할론 등은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동력이 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경주 APEC은 일회성 행사를 넘어, 경주 화백컨벤션센터를 중심으로 마이스 산업을 지속적으로 육성하고 한국의 문화와 기술력을 세계에 각인시키는 경제안보 외교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평가될 것입니다.

APEC 경주 주요 회담별 핵심 쟁점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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